기타

권위와 신뢰가 주는 착시와 핑계

앤드닥 2014. 5. 6. 09:32

 

 

 

심리학사에 유명한 실험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거의 모든 심리학 개론 서적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것이 바로 1960년대 예일대학 심리학과의 스탠리 밀그램(Stanley Milgram) 교수가 보여줬던 복종 실험이다.1) 그리고 이 실험은 권위 혹은 권력으로부터 나오는 부정하거나 정의롭지 못한 지시에 한 개인이 자신의 자아를 잃은 채 얼마나 쉽게 복종하는가를 아마도 가장 잘 보여준 연구일 것이다. 이 연구는 아래와 같은 실험실에서 이루어졌다.

Milgram, S. (1963). "Behavioral Study of Obedience". Journal of Abnormal and Social Psychology 67 (4): 371–8.주석 레이어창 닫기

 

 스탠리 밀그램의 복종 실험

 


실험의 목적을 모른 채 실험 참가자는 선생님(T: teacher)의 역할을 맡는다. 칸막이 뒤에는 학생 역할을 맡은 사람(L: learner)이 문제를 풀고 있고 선생님은 학생이 문제를 틀릴 때마다 전기 충격을 16V씩 올리라고 실험자(E: experimenter)에게 지시받는다. 물론 실험자와 학생은 사전에 시나리오대로 움직이는 사람들이고 실제로 전기충격을 받지는 않는다. 오직 선생님만 이 실험의 목적과 내용을 모르고 있다. 일종의 몰래카메라인 셈이다. 선생님 역할을 맡은 참가자는 지시받은 대로 학생이 문제를 틀릴 때마다 전기충격의 수준을 올렸고 그 때마다 학생은 괴로운 척 하는 연기를 했으며 따라서 참가자들은 대부분 몇 번 정도 전기충격을 주고는 더 이상 못하겠다고 실험자를 돌아보며 얘기했다. 그러나 실험자가 “그 정도의 전기로는 사람이 죽지 않습니다. 결과에 대해서는 제가 모든 책임을 지겠습니다.”라고 하자 놀랍게도 참가자의 무려 65%(40명 중 26명)이 450V에 해당하는 전기충격에 도달할 때까지 버튼을 계속 눌렀다. 상식적으로 450V의 전기라면 거의 모든 사람이 죽을 수밖에 없는데도 말이다. 심지어 원숭이조차도 자신이 어떤 버튼을 눌렀을 때 다른 원숭이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본다면 그 버튼을 오래 동안 누르지 않는다고 한다.

그 버튼을 누르면 먹이가 나옴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어째서 인간은 이런 일을 하는 것일까? 원숭이보다도 더 우수한 생명체라고 자부하면서 말이다.

 

 

자기합리화와 책임감의 회피가 만들어내는 복종 

 

권위는 우리로 하여금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고 책임을 지지 않아도 괜찮다는 핑계를 가능하게 한다.
<출처: gettyimages>

 

 
이 실험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실험자가 책임을 지겠다는 메시지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실험자는 심리학 연구에 상당한 경험이 있는 것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따라서 일종의 ‘권위’가 있는 셈이었다. 450V의 버튼을 눌렀던 참가자들은 실험이 모두 끝난 뒤 왜 전기충격을 계속 주었느냐는 질문에 “지시대로 따랐을 뿐”이라는 핑계를 댔다.만일 그 실험자가 어리숙하고 경험이 적어 보이는 나이 어린 조교라 해도 그런 핑계가 가능했을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일이 왜 가능했었는지 답이 나오기 시작한다. 권위는 우리로 하여금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고 책임을 지지 않아도 괜찮다는 핑계를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실제로 그 행동을 하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면서도 말이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입힌 일을 저지른 고위공직자나 금융계 인사가 검찰에 출두하면서 수치스러워 하거나 반성을 하는 모습을 보이기는커녕 고개를 빳빳이 들고 당당한 얼굴로 이런 투의 이야기를 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바로 조직이나 윗선을 위해서(즉 지시를 받아서)라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양심을 종종 이 권위와 맞바꾼다. 그렇다면 이 사람들은 자신이 한 일이 정말 부도덕하거나 나쁜 짓이라는 것을 몰랐을까? 수사나 조사과정에서는 자신의 행동이 가져올 파급효과에 대해서 당시에는 잘 몰랐다고들 하지만 아닐 가능성이 더 높다. 왜일까? 신경과학적 방법을 사용한 심리학 연구들은 그 몰랐다는 변명에 대해 일침을 가한다. 거짓말 하지 말라고 말이다.

 

 

부정함의 지각과 수용은 별개의 문제다 

최후통첩 게임에서 불공정한 제안이 이루어지면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은 이 제안을 거부한다.

<출처: gettyimages>

 

 
심리학뿐만 아니라 경제학, 사회과학 등 사회과학 분야 전반에 걸쳐 자주 사용되는 게임 형태의 실험과제가 있다. 이른바 최후통첩 게임(ultimatum game)이라는 것이다. 이 게임에서는 A와 B 두 명의 플레이어가 게임을 하고 있는데, 예를 들어, A에게 10만원이 주어진다. A는 자신이 받은 돈의 일부를 B에게 나누어 주어야 하는데 얼마를 주는지는 자유이다. 그리고 B는 A가 주는 돈을 받거나(수용) 그 제안을 거부할 수 있다. B가 A의 제안을 수용하면 그 제안대로 각자 돈을 나누어 가질 수 있으며 만일 거부하면 A와 B모두 돈을 전혀 받을 수 없다. 만일 A가 돈을 5대 5로 나누자고 제안한다면(아마도 이 제안은 공정한 제안일 것이다) B는 둘 모두 돈을 받을 수 없는 ‘거부’를 하지 않고 ‘수용’할 가능성이 클 것이다. 문제는 A가 자신이 8만원을 가지고 B는 2만원만 가지라는 (즉, 불공정한)제안을 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이러한 불공정한 제안을 대부분의 B들은 거부한다. 그런데 이는 어찌 보면 바보 같은 일이다. 왜냐하면 A의 제안을 수용하면 어쨌든 2만원의 공돈이 생기는데 이를 거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이러한 불공정한 제안을 받아들일 경우 가질 수 있는 돈이 자신의 1~2개월 치 월급에 해당하는 돈일 경우에도 거부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 정도로 불공정함이나 불평등함을 혐오한다. 자신이 무언가를 가지지 못해도 불공정한 제안이나 지시를 내리는 사람이 큰 이익을 취하는 것을 막으려 한다는 것이다.

 

이후의 신경과학 연구에서는 더욱 구체적으로 이를 설명해 준다. 사람들은 최후통첩 게임에서 불공정한 제안을 받을 경우, 배외측 전전두피질(DLPFC: dorsolateral prefrontal cortex)이 평상시보다 훨씬 더 많이 활성화 된다는 것을 발견했다.2) 그렇다면 이 뇌영역이 ‘불공정함’을 알아차리게 만들어주는 곳일까? 이후의 연구들은 조금 더 복잡한 이야기를 해 준다. 이 영역 중 일부가 바로 ‘신뢰’를 담당하는 곳이라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이 영역이 손상된 환자는 제안을 하는 사람이 얼마만큼 믿을 수 있는 사람인가를 판단하는 능력이 떨어지고 대부분 마냥 믿는 경향성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3) 따라서 믿기 때문에 불공정한 제안을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이를 자주 경험한다. 가족 혹은 가까운 친구들로부터 부적절한 제안이나 지시를 받을 경우 ‘이러지 말아야 하는데”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 일을 결국 하는 이유가 그들을 믿기 때문이다.

배외측 전전두피질


보다 중요한 점은 이 영역이 손상된 환자들조차도 자신에게 주어진 제안이 얼마나 불공정한 것인가를 이야기해 달라는 요청에 정상인과 다르지 않는 판단 능력을 보여줬다. 즉, 불공정함을 지각하는 것과 받아들이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는 것이며 모르기 때문에 그것을 무작정 실행하거나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알면서도 한다는 것이다. 뇌의 다른 영역이 손상되어 지적인 판단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가 아니라면 말이다.

 

 

자유로워지기 위한 신뢰, 비겁함을 덮어주는 신뢰

 

그런데 어떤 대상이 충분히 신뢰할만하지 않은데도 믿어버리고 싶은 욕구가 우리에게 있는 것은 아닐까?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앞서 논의했듯이 신뢰를 주거나 권위를 부여해 버리면 내 행동의 잘잘못이 가져야 하는 책임이 나로부터 떠나기 때문이라는 암묵적인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닐까?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왜냐하면 인간에게는 자기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고픈 강한 욕구가 존재하며 이러한 합리화를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이 내 행동의 원인을 나 자신이 아닌 외부의 다른 곳에 두는 것이다. 한편으론 비겁하기도 하고 또 다른 한편으론 어리석은 생각일 수 있다. 대부분의 경우 세상은 그 행동의 책임을 내가 생각한 것보다는 훨씬 더 강한 정도로 물을 테니 말이다.

 

 

 

 

 

글김경일 |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고려대학교에서 심리학 석사를 받았으며 미국 University of Texas - Austin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국제학술논문지에 Preference and the specificity of goals (2007), Self-construal and the processing of covariation information in causalreasoning(2007) 등을 발표하였다.

 

 

 

 

출처 :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133&contents_id=6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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